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 익명으로 명예훼손 추적가능할까
회사 생활만 15년차 이상. 회사 생활에 나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갑작스런 블라인드 게시글의 주인공이 되면서 멘탈이 털린 경험이 있습니다.
팀장님께 개인사정으로 양해를 구하고 2개월 정도만 출근 시간을 조정해 줄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팀장님께서도 곧 유연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니, 늦게 출근 하는 시간 만큼 퇴근 시간을 미루고, 업무상 문제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고 하시더군요.
제 업무와 관련된 담당자들에게 개인 사정으로 오전 9시~10시 사이 출근 가능할 것 같으며 업무상 문제되지 않도록 신경쓰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난 시점,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앱인 블라인드 게시글에 저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건네 듣고 블라인드 메일 인증 후, 어떤 내용이 올라왔는지 읽어 보았습니다.
< 한 사람에게만 주는 특혜 > 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게시글과 그 밑에 댓글은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유, 개인사정이 뭔지도 모른 채, 이렇게 익명을 보장하는 앱을 통해 멋대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건가...
심지어 사실과 맞지 않은 몇 달 내내 11시반 전후 출근이라는 글까지... (사실과 전혀 다른)
댓글 단 아이디 중 seoxe 는 제게 큰 원한이라도 있는지, 댓글을 여러개 달았더군요. 자진해서 퇴사하라는 글과 부서장과 해당 직원과 유착관계가 있다는 둥. (아, 굴욕적입니다. 유부녀에게 부서장과 유착관계라니?)
궁금해서 작성자가 누군지, 댓글을 단 사람이 누군지 역추적 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라인드 앱이 익명을 보장한다고는 하나, 앞서 기재된 작성자명은 이전에 작성된 글(동일한 아이디로 작성한 게시글이나 댓글)을 기반으로 누구인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에게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유추하니 더욱 누가 이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사팀도 아니고 업무적으로 유관한 사람도 아닌, 이 글의 작성자는 다름 아닌 저와 가장 오래 함께 하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직장 동료였습니다. 앞에선 "언니" "언니" 하던 직장동료가 뒤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죠.
하물며 댓글에는 "부서장과 해당 직원과의 유착관계" 를 의심해 봐야 한다라는 댓글까지 있었습니다. 일부러 캡쳐해 뒀죠. 이미 2년이 다 되어 가는 사건이지만, 제게 이 일은 꽤나 큰 충격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제게 직접 와서 왜 언니만 이런 혜택을 받아요? 무슨 개인사정인데요? 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고, 제게 직접 물어보기 불편했다면 인사팀을 통해서 확인을 하는 방법, 팀장이나 본부장을 통해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고요. (물론 자율출퇴근제나 시차출퇴근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이런 마찰은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겠죠.)
이런 다양한 방법을 두고, 그가 택한 것은 익명 공간에 글쓰기.
왜 그런 글을 익명 게시판에 썼냐 물어보니 본인 또한 누리고 싶었다고 하네요.
언젠가 그 친구가 회사에 입사한 변호사 여자직원을 두고, 꽤나 시기 질투를 하기에 이유를 물으니, "하는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변호사라는 이유로 우리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다." 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 때도 꽤나 쇼킹했습니다.
'변호사'라는 라이선스가 있으니 당연히 일반 라이선스가 없는 직원 보다 금전적 보상이 더 이루어지는 건데 왜 그걸 두고 불합리하다 라고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회사라는 같은 공간에 업무를 하다 보니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모두 자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 상대방이 잘 하는 것에 대해 '존경'이 아닌, '시기', '질투'의 자세.
나이가 본인보다 어리면 월급이 본인보다 적어야 하며, 직급이 본인과 같으면 월급이 본인과 같아야 하며,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자산 수준도 비슷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고 방식.
다행히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바로 돌아가시기라도 했으면 그 친구를 두고 두고 원망했을지도요. (물론,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에게 그리 좋은 감정은 생기지 않습니다) 제 업무와 1도 관련 없는 전혀 무관한, 어드민 직무에 속한 여자직원이 앙심을 품고 여기 저기 저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게 참 충격적입니다. 그것도 함께 자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가까이 어울렸던 친구인데 말이죠.
이제 좀 마음이 가라 앉은 것 같아 1년 반이나 지나고 나서야 이 글을 남겨두네요. 결국, 이 친구와는 말도 섞지 않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퇴사하려 했는데 주위에서 왜 굳이 그 한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냐, 되려 그만두면 너만 손해다 라는 이야기에 아직 다니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만. 이 이후로도 블라인드 게시물을 보면 참 한가한 사람 많다- 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누구와 누구가 사귀고 있대- (그래서 어쩔?) 누구와 누구가 불륜사이래- (사실관계 확인 안됨) 이번 연봉 인상률은 몇 프로? (개인마다 다른건데 왜?) 우리 인센티브 줌? (때가 되면 받겠지) 우리 회사에 예쁜 애 없어? (연애하러 회사 오나봄)
회사라는 공간이 업무를 하는 공간이지, 친목도모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더 공고해지네요. 그리고 다시금 느끼는 건 '역시, 내가 사장이라면 여자직원은 안 뽑는다.'
카더라-를 넘어 익명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공간에 사실 관계 확인도 안된 이야기꺼리를 너무 마음 편하게 끄적이더군요. 팀블라인드(회사명) 입장은 익명으로 운영되며 사용자 추적이 어렵다- 라는 입장이지만, 사실 그건 블라인드 입장이고 가입을 할 땐 메일 계정을 넣어 승인이 나야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내부망/외부망 구분하여 운영되고 있는 회사 체계이고 감시 감독이 가능한 시스템 체계를 갖추고 있는 회사라면 충분히 글 작성자를 유추하여 잡아낼 수 있죠. (수백, 수천명의 직원이 있는 회사는 힘들겠군요)
'익명이다! 와! 나인 줄 모를거야!' 착각하며 사실이 아닌 글을 마구 써내려갔다가 소송에 휘말리면 빅엿을 먹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어디까지나 블라인드 앱은 눈팅용 정도가 딱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