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애중

아가야, 엄마처럼 크렴 - 부모님의 이혼에도 자존감이 높았던 이유

버섯공주 2020. 12. 12. 07:00

아가야, 엄마처럼 크렴 - 부모님의 이혼에도 자존감이 높았던 이유

신랑과 연애할 때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혼을 하고나서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네버엔딩 토크 토크 토크... 여자친구들과 있을 때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 않아요. (욕인가, 칭찬인가)

신랑과 종종 '나의 어떤 점이 좋았어?' '나 어디가 좋아?' 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이미 연애할 때도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혼식을 할 때도, 신혼여행을 갈 때도, 첫 아이를 낳았을 때도,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도, 밥 먹다 말고도 이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아, 물론, 저 주제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사람은 신랑입니다. 

그럴 때면 제가 항상 다시 되묻습니다.

"전에도 이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또 듣고 싶어?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또 읊으려면 시간 걸리잖아. 자, 잘 들어. 어디가 좋냐면..." 

신랑은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정말 강한 사람이에요. 상대적으로 저에 비하면 말이죠. 전 다른 이의 평가보다 제 자신에게 기준점이 있어 타인에게 듣는 칭찬이나 인정 받는 말에 그리 휘둘리지 않는 편입니다. 상대적으로 남편은 칭찬이나 인정해 주는 말을 많이 듣고 싶어 하더라구요.

이 주제로 또 신랑과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너처럼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
"응. 나도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자존감 높은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
"...응. 그래. 대단하다..." ㅋㅋㅋㅋㅋㅋ
"
하지만 난 새코미(신랑)가 커왔던 환경처럼 화목한 가정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싶어. 아무래도 내가 자존감이 높은 건 자라온 환경 영향인 것 같아서 말야."

자존감의 근원지

13살 부모님의 이혼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잠이 들 때마다 너무 무서웠거든요. 잠이 들려고 눈을 감으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투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아마, 한 번도 이런 제 속내를 부모님께 이야기 한 적 없어서 모르실거에요.

자녀에게 부모의 존재는 세상의 전부

대부분의 부모가 이혼을 고려하게 될 때 '내가 이혼하면 이 핏덩이들은 어떡하지?'라며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지, 정작 그 시기의 자녀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는 듯 합니다. 자녀가 모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르는 척 하는 것이지, 딸이, 아들이, 모르는 게 아니랍니다. 

"눈 감아. 귀 닫아. 언니가 있잖아. 괜찮아."

저보다 6살 어렸던 여동생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부모님의 다투는 소리를 캄캄한 제 방에서 오로지 귀에만 의존해 상황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다툼을 들으면서 가진 생각은 '내가 강해져야겠다' 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당시 부모님의 이혼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습니다. 

우당탕- 소리라도 나는 날에는 문 안에서 엄마가 다치시려나, 아빠가 다치시려나,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이혼 이후에도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 때문에 헤어지신 게 아님을 알면서도 내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어땠을까? 내가 아들이었으면 아빠가 바람 피우지 않으셨을 것 같아- 내가 좀 더 중간에서 잘 할 걸- 그 어린 나이에도 이런 저런 생각에 무척이나 속이 쓰렸습니다. 

"비록 엄마, 아빠는 헤어지지만 넌 절대 주눅들지마. 넌 너의 삶이 있고, 동생도 동생의 길로, 엄마도 엄마의 길로, 아빠도 아빠의 길로 가려는 것 뿐이니까."

아버지의 쿨내 나던 '자녀 앞에서 이혼 못박기'는 그야말로 쇼킹했습니다. 열 세살 딸 아이에게 너의 삶, 너의 길을 가라고 하시다니. 이혼 후, 아버지가 뒤돌아 나가시고 어머니와 동생이 함께 단칸방에 남겨지니 본능적으로 살아 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 발동했었나 봅니다. 

너무 힘들다 보니 이겨내기 위해 끊임 없이 '난 할 수 있다.' '난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 '난 이겨낸다.' 등 다양하게 자기 암시를 걸었던 것 같아요. 지난 과거의 저를 제가 만날 수 있다면 너무 애쓰지 말라고 안아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 자기 암시가 하나의 최면이 된 것 같습니다.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일을 겪고 나니, 왠만한 일에선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일이 있어도 내가 살아 있는 절대적인 이유이자, 존재였던 부모님이 이별하는 일을 겪고 나니 그에 비하면 너무나도 별 것 아닌 일이었습니다.

동사무소에 찾아가 "쌀 받으러 왔어요. 어머니와 동생이 함께 살고 있어요."

수능 끝나고 교복을 입은 채로 고기집에 찾아가 "아르바이트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찾아왔어요."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그 당시에 비하면 어느 것 하나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약점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이유

부모님의 이혼 덕분에(때문에?) 타인에게 '이혼한 부모의 아이라서 그래.'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서 그래.'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예의바르게 행동하며 더 모범적으로 살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면서 듣게 된 말은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는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참 대단한 것 같아.'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 그런 말을 들으니 가뜩이나 높은 자존감은 더 높아지고, 하는 일은 더 잘되었습니다.

약점을 이겨 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값으로 인해 결국 약점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부모님의 이혼이 처음엔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후에는 어느 누구에게 이야기 하더라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묵묵히 나는 내 길을 간다

각자의 삶이 있다. 개개인의 삶이 있다. 어느 누구도 내 인생에 관여할 수 없다. 내 선택에 따라 내 인생은 만들어진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결과는 오로지 내 선택에 달려 있다.

"난 지금 당장 알몸으로 길 바닥에 내팽겨쳐진데도 무섭지 않아. 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 본터라,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도 이겨낼 수 있어. 지금 나의 이 단단한 마음만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면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