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저장도 안 해둔 번호였는데, 첫 문장을 보고 바로 알았다. 전 직장 상사였다.
"잘 지내냐. 도통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연 끊고 살자는 거 같은데."

십 개월 만에 온 연락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 그럴 리가요" 하고 웃었다. 손가락은 이미 웃는 말투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대화가 다 끝나고 나서, 이상하게 뒤늦게 화가 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부담의 정체는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불편한데도 예의를 갖춰야 하는 관계, 거기서 오는 '감정노동'이었다. 혹시 지금 비슷한 연락 앞에서 마음이 복잡한 분이 있다면, 오늘 이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나처럼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 관계를 끊지 않고도 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십 개월 만에 온 그 연락
나는 사 년쯤 전에 이직을 했다. 십 년 넘게 다닌 회사였고, 연락을 준 분은 내가 신입사원일 때 부장이셨던 분이다. 나이로 치면 부모님 뻘. 직급으로도 한참 위였다.
그러니 나는 늘 예의를 갖춘다. 영원히 안 볼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자리에서 또 어떻게 만날지 모르고,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이건 사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계산일 것이다.
문제는, 그 계산이 나를 늘 웃는 쪽에 세워둔다는 거였다.
나는 왜 또 "네네" 하고 웃었을까
그날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면 이랬다.
"연락 없는 거 보니 연 끊고 살자는 거 같은데"로 시작해서, 회사에서 잘나가느냐, 임원 승진은 했느냐를 물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시간 좀 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비즈니스로 소개해줄 사람도 있고, 물어볼 것도 있다면서.
나는 "수, 금 빼고 가능해요", "무슨 일이세요?", "네네" 하며 맞췄다. 시간을 정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7시 이후면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이 이랬다.
"애매하네. 7시 이후면 7시 1분도 된다는 거냐? 넉넉잡고 칠시 반?"
나는 또 "네네 좋아요" 했다. 밤늦게 연락해서 미안하다는 말에도 "네네 들어가세요~~~" 하고 웃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대화 내내 감정을 서비스하고 있었다. 물결표를 붙이고, 이모티콘을 누르고, 상대의 말투를 받아주고. 정작 내 기분은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로.


불편한 건 그 사람이 아니었다
대화가 끝나고 나서야 화가 올라왔다. 나는 남편을 붙잡고 물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왜 불쾌하지? 이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 걸까. 쉽지 않네."
말로 뱉고 나니 조금 선명해졌다. 나를 불편하게 한 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다. 불편해도 웃어야 하는 내 쪽의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대화엔 크고 작은 '선 넘기'가 있었다. 안부를 죄책감으로 여는 말투, 늦은 밤의 연락, "7시 1분도 되냐"는 식의 은근한 시험. 하나하나는 예민하게 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 다 웃으며 받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쓴다.
거절하지 못하는 관계에서는, 예의가 곧 감정노동이 된다. 감정노동이 원래 '내 진짜 감정과 다른 감정을 연기해서 파는 일'을 뜻한다는데, 나는 월급도 안 나오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언젠가 또 볼 사이'라는 계산이 나를 을로 만든다
솔직히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다. 상대가 무안할까 봐,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나중에 아쉬운 소리 들을까 봐. 그래서 웬만하면 맞춘다.
여기에 '언젠가 또 볼 사이'라는 계산까지 얹히면, 나는 거의 자동으로 을(乙)의 자리에 선다. 상대가 밤에 연락해도 바로 답하고, 애매한 약속도 받고, 불편한 농담도 웃어넘긴다.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어느 순간 나를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예의를 갖추는 것과 나를 갈아 넣는 것이 같은 말이어야 할까. 나는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이렇게 해보려 한다
아직 그 약속은 다음 주다. 만나기 전이라 결론을 다 내리진 못했다. 다만 이번엔 몇 가지를 지켜보려 한다.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 내 자리를 지키는 현실적인 방법들이다.
첫째, 밤에 온 연락은 다음 날 답한다. 즉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언제든 대기 중인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호가 된다. 다음 날 아침에 "어제 늦게 봐서 이제 답드려요" 한 줄이면 충분하다.
둘째, 약속 시간과 장소는 내가 먼저 제안한다. "7시 1분도 되냐"는 타박이 나온 건, 결정권을 내가 상대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먼저 "저는 화요일 7시 반, ○○ 쪽이 편해요"라고 던지면 시험당할 일이 없다.
셋째, 만남의 범위를 미리 좁힌다. '비즈니스 소개'처럼 목적이 모호한 자리일수록, 내 안에서 미리 선을 긋는다. '식사 정도만, 두 시간 안쪽으로.' 소개받는 자리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지 않고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를 준비해 둔다.
넷째, 예의는 따뜻함이 아니라 담백함으로 갖춘다. 물결표 세 개와 과한 웃음은 오히려 상대에게 파고들 여지를 준다. "네,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담백한 한 문장이 더 단단한 예의다.
다섯째, 모든 초대에 '예스'가 예의는 아니라는 걸 기억한다. 정중한 거절도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이다. "이번엔 일정이 어려워서요. 다음 기회에 뵐게요." 거절은 관계를 끊는 일이 아니다.
여섯째, 대화가 끝난 뒤 나를 탓하지 않는다. 뒤늦게 올라온 불쾌함은 내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남편에게 털어놓았던 그 순간처럼, 내 감정을 일단 인정해주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전히 다음 주 약속이 조금 무겁다. 아마 그 자리에서도 나는 예의를 갖출 것이다. 다만 이번엔, 웃는 얼굴 뒤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 한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라는 건 늘 어렵고, 나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니까.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졌다. 불편함을 느끼는 건 잘못이 아니라 신호라는 것. 그 신호를 못 본 척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나를 지키는 일이 시작된다는 것.
혹시 지금 비슷한 연락 앞에서 마음이 복잡한 분이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웃어준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웃어야만 했던 그 관계가 조금 불편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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