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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취하고, 술에 취하다 – 불편했던 회식자리, 지금은?

· 댓글개 · 버섯공주

전 11시만 넘어가면 제 몸이 더 이상 제 몸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제게 아주 고질병이 있습니다. 쓰러지듯 잠든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일정 시간(11시 30분~12시쯤)이 지나면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풀썩 어떠한 자세로든 바로 잠든다는 겁니다. 하품하고 하품하면서 울고 난리도 아닙니다. 하아.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자거나 그러진 않아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고...

문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11시가 넘은 시각에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게 되면 또 그대로 잠든다는 거죠. 이런 저 때문에 항상 남자친구는 노심초사입니다. 전 항상 "괜찮아" "서서 가면 돼" 라고 이야기 해 보지만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가 봅니다. 회사 일로 인해 늦은 시각에 퇴근할 때면 데려다 줄 수 있는 시각엔 집까지 데려다 주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집으로 가는 동안 계속 통화를 하면서 집으로 가죠.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고3 수능(그러고 보니 오늘이 수능일이네요)을 앞두고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도 늘 힘든 것은 쏟아지는 잠과 싸워 그 잠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거뜬한데, 좀처럼 밤 늦은 시각까지 말똥말똥 눈을 뜨고서 공부한다는 건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아침형 인간이지만 다르게 표현하자면 잠 하나 못이기는 '잠팅이'죠.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맥주 한 잔, 혹은 소주 한 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졸릴 뿐. 왜 술을 대낮에 마시지 않고 늦은 밤에 마시는 겁니까. (응?) 그렇다 보니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잠에 취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런 저의 상황을 아는 친구들은 늦은 시각 술자리에 부르기 보다는 이른 저녁 시각 혹은 대낮에 모임을 가지죠.

헌데, 단순히 잠이 문제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들 하는데 왜 전 되려 기분이 나빠지고, 술이 달다고 하는데 왜 저에겐 어떠한 술도 쓰기만 한 걸까요.

입사준비를 하면서 면접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있었으니, 바로 주량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씨는 주량이 어떻게 되나?"
"음…"

한참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어느 정도 마셨을 때 한계다- 라고 생각되는 정도가 없나?"
"글쎄요. 한번도 취한 적이 없어서"
"오- 술이 무척 센가 보군."
^^


그저 미소를 살짝 띄울 수 밖에.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술자리에서 (주로 부서 회식은 술자리를 갖지 않고, 피자를 먹으러 갑니다) 부장님이 가끔 이야기 하시죠. 정말 처음엔 제가 술을 잘 마시는 줄 알았다고 말이죠.

술을 잘 마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한번도 취해 본 적이 없다고 말씀 드렸을 뿐.

술자리에 가게 되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기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무래도 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회식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입사 초기엔 술을 건네 받으면 요령껏 술을 받되 마시지 않고 피했습니다.

  • 식탁 아래 물컵을 내려 놓고 마시는 척하며 아래로 따라 버리기
  • 물수건을 항상 옆에 두고 물수건으로 입술 주변을 닦아 내는 척 하며 뱉어내기
  • 상대방이 술을 마실 때 그 시선을 확인하며 술을 잘 마시는 옆 사람(내 편 이어야 함) 잔에 술 옮기기
  • 술을 마시고 입에 머금은 채, 물을 마시는 척 하며 물컵에 다시 뱉어내기 등등.

이러한 행동들을 하면서 단 한번도 들킨 적이 없습니다. (마술로 단련된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 대신, 계속적인 이러한 행동은 그 자리에 있는 저도 지치게 하더군요. 후에는 술 마시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 하고 그 자리가 소주를 마시는 자리라면 소주잔에 물을 담아 계속 마시고, 와인을 마시는 자리라면 와인잔에 물을 담아 계속 마셨습니다.

술잔
술잔 by JoonYoung.Ki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처음엔 분명 밉상으로 보였을 겁니다. 아무래도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회식 자리에서 자연스레 먼저 자리를 떠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죠. 술자리에 가더라도 너무 늦은 시각이 아닌 이상 끝까지 자리에 함께 하려 했습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죠.

"저 여직원은 부르지마. 어차피 회식 한다고 하면 중간에 몰래 도망가잖아."

이와 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제안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오랜만에 피자 한 판 하러 갈까요" ("소주 한잔 하러 갈까요" 를 바꿔 표현하죠)라고 이야기 합니다. 입사 초기엔 회식 자리가 상당히 불편하고 어색했는데, 이제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 졌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업무에 바빠 듣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나 큰 그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좋은 듯 합니다.

입사 초기,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한 회식 자리(술자리)로 인해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만, 솔직히 술을 못 마신다고 이야기 하고, 술자리가 있으면 최대한 그 자리를 지키며 어울리되 먼저 회식 자리를 제안하면서 술이 아닌 다른 메뉴를 먼저 제안하는 것도 제 나름의 좋은 대처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잠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아- 사랑에 취하고… (응? 갑자기 이게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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